Euyoung Hong

    • Biography
    • Artworks
    • Texts
    • Publications
    • News
    • Contact
Arrangement Within Arrangements - 홍유영
  • 배열 속의 또 다른 배열글 _ 홍유영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말테의 수기(Die Aufzeich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1910)에서 비중 있게 다룬 공간적 장치인 “거리를 향 해 난 창문”은 단순히 경계 또는 안과 밖을 분할하는 건축적 구조로 인식하기 보다는 대상으로의 단순한 몰입이나 동일시에서 벗어나서 가까이 있으면서 도 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공간을 함유하는 거리(distance) 즉 시선의 장치(the apparatus of the gaze)라는 개념을 통해서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마 미술관의 《Arrangement Within Arrangements》(2026)에서는 단일한 실체가 아닌 각각의 구조와 대상, 장소가 서로 얽혀 다양한 층위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와 형태를 재구성하는 다중체(assemblage)로 존재하는 일상의 공간과 사물을 절대적 공간을 함유하는 배열 속의 배열을 통해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체계들이 중첩되는 지점들을 들여다본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배열 속의 또 다른 배열”은 거리를 향해 난 창문을 서 로 다른 공간들 사이에 배치하는 방식과 관계한다. 객체와 주체,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부재 등 서로 다른 대상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드러내고, 동시에 직접적인 개입이 아닌 닿을 수 없는 것을 상기시켜 보이 지 않는 긴장감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한다. 창문을 사이로 존재하는 다른 공간과 대상들은 각기 다른 배열의 질서와 논리를 갖고 있는데 보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창문은 시선을 통해서 멀리서 작용 가 능하게 하고 “거리를 둔 채 하나의 사물 안에 감춰진 힘을 일깨우고 배열”하 게 한다.1) 여기서 배열은 단순히 형식적인 차원을 너머 보이지 않는 공간 질 서가 관계하는 방식 즉 이질적인 장치로서 구조들 사이에서 작동하며 구축된 질서의 역학 관계를 재구성하여 침묵하던 힘, 관계, 존재, 부재의 변화된 위상(topology)을 주목하게 한다. 일상 공간과 사물의 질서를 해체하고 배열하는 것은 하나의 단일화된 방식으로 되는 것이 아닌 다중의 구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을 망각 속에 빠뜨리고” 복잡성과 긴 장을 여러 층위로 드러나게 한다. 랑시에르는 이를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만드는 픽션의 정치”라 언급하며 “서사의 곧 사라질 열림, 그 임의의 순간은 아무것도 아닌 어떤 삶의 단순한 불행을 모든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역량을 내포한다”고 서술한다.2) 배열 속의 또 다른 배열은 안과 바깥의 “양 립이 불가능한 요구들”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새롭 게 구축된 구조를 열어 다른 형태의 질서와 형상을 떠올리며 변주하게 한다. 특히 투명한 유리와 가는 선재 그리고 화이트에 가까운 연한 아이보리 색감으로 마감된 변형된 오브제들로 구성되어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흐릿하게 서있는 작품들은 관람객과 작품 사이에 “절대적 공간을 함유한 거리”를 설정하며 보이지 않는 시선의 구조를 만든다. 임의의 지점에서 쉽게 사라지거나 다시 나타나며 새로운 형상을 드러내는 이 작업들은 안과 밖의 경계가 서로 침투하지 않고 멀리서 작용하는 다중적 배열의 노드(node) 즉 배열 속의 또 다른 배열을 지나며 모든 지표가 사라지는 찰나에 “창가에 서는 방법”과 “보는 방법”을 다시 고안하게 한다.     1)         자크 랑시에르, 『픽션의 가장자리: 새로운 주제, 공통의 세계를 찾아 나선 지적 여정』, 최의연 (역), 오월의 봄, 2017, p. 71.2)         Ibid, p. 314.   Arrangement Within ArrangementsEuyoung Hong  The “window facing the street,” a spatial device Rainer Maria Rilke described at length in The Notebooks of Malte Laurids Brigge (1910), is not simply an architectural feature or a boundary dividing inside and outside. It can be understood through another lens, as a concept of distance, an apparatus of the gaze that creates an absolute space that is close yet unreachable, moving beyond immersion in or identification with the object. Everyday spaces and objects are not uniform things; they exist as assemblages in which each structure, object, and place is intertwined with others and constantly reconstructs meaning and form across multiple layers and relationships. In the exhibition Arrangement Within Arrangements at the SOMA Museum of Art, the artist examines the points where complex and heterogeneous systems overlap through arrangements that contain this sense of absolute space. The exhibition title, “Arrangement Within Arrangements," relates to the way windows facing the street are positioned between different spaces. It reveals what had previously gone unseen in the gaps between various entities, such as object and subject, material and immaterial, presence and absence, and it becomes a medium that stirs invisible tension and anxiety by reminding us of what is unreachable rather than offering direct intervention. The other spaces and entities that exist between these windows each follow their own order and logic of arrangement. The window, which makes the act of seeing possible, allows these elements to operate from a distance through the gaze and “awakens and arranges the power hidden within a single object while keeping its distance.”1) Here, arrangement functions as a foreign device within structures, a way for invisible spatial orders to remain connected, moving beyond a purely formal dimension. Dismantling and rearranging the order of everyday spaces and objects does not happen in a single, unified way. Instead, it generates a new order across a range of different structures. In this process, what is near and what is distant fall away from clear distinction, and complexity and tension emerge across multiple layers. Jacques Rancière calls this “the politics of fiction that turns nothing into everything” and explains that “the narrative’s soon-to-disappear openness, or that random moment, carries the ability to turn a simple misfortune into a whole.”2) Another arrangement within an arrangement reconstructs the relationships of “incompatible demands” between inside and outside, opening up newly constructed structures among heterogeneous elements and evoking different forms of order. The works are composed of transparent glass, thin wires, and transformed objects finished in a pale ivory hue close to white. These works repeatedly appear and disappear and establish a distance that encompasses an absolute space between the viewer and the artwork, creating an unseen framework that guides how the viewer looks. They also easily disappear or reappear at certain moments, revealing new forms. Moving through the nodes of multiple arrangements, where the boundaries between inside and outside do not permeate each other but operate from a distance, the works prompt us to reconsider “how to stand by the window” and “how to see.”   1)         Jacques Rancière, Les Bords de la fiction, trans. by Choi Eui-yeon, May Spring, 2017, p.71. 2)         Jacques Rancière, Ibid., p.314.
배열을 통한 분절과 연결 - 이수민 소마미술관 학예연구원
  • 하얗게 비워진 전시 공간 속에서 홍유영의 작품들은 흐릿하고 절제된 물성으로 자리한다. 이 절제된 시각적 태도는 흔히 선명한 대비가 즉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작품은 강렬한 시각 정보 대신, 관람자의 인식이 시각 너머의 감각적 층위로 이어지게 한다. 흐릿함은 모호함이 아니라 더 깊은 지각의 층을 여는 여백이 된다. 홍유영은 오래전부터 건축적 장소와 환경의 해체 과정에서 발견한 사물과 자재의 파편들을 작업 재료로 삼아왔다. 버려진 재료의 흔적과 시간성을 탐 구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가구와 유리의 구조적 가능성과 조형적 변화를 지 속적으로 연구해 왔고, 이를 통해 작가만의 조형적 재구성을 발전시켜 왔다. 작품 “배열 속의 또 다른 배열(Arrangement Within Arrangements)”은 이러한 조형적 사유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유리판들이 적층적으로 놓인 이 작품은 유리의 투명성, 면의 중첩, 빛의 반사와 그림자가 결합하여 하나의 다층적 배열을 구축한다. 각 유리판은 독립된 조형적 단위로 존재하지만, 투명한 물성을 통해 서로의 구조를 비추고 겹쳐 보이게 하며 새로운 배열의 관점을 생성한다. 이는 물리적 구조물의 결합을 넘어, 관람자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하는 관계적 배열을 보여준다. 유리의 중 첩과 그 경계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농담(濃淡, light and shade)은 전시 공간 과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마치 네거티브 필름(Negative film)을 통과한 빛이 이미지를 만들어 사진이 완성되듯, 작품의 완성은 제작이 끝난 시점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빛과 그림자가 더해지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와 더불어 작가는 수집된 오브제들을 재구성한 조각작품을 통해 또 다른 공간적 언어를 펼쳐낸다. 일부 오브제는 오래된 가구를 재사용해 만들어졌으며, 작가는 이 재료를 단순한 조각 요소로 두지 않고, 해체와 재배열을 통해 새로운 곡면과 구조를 구축해낸다. 이 과정에서 점, 선, 면이라는 기하학적 요소들은 서로의 역할을 재배치하며, 공간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연결 의 흐름을 형성한다. 전시실에 놓인 각각의 작품은 개별적 존재로 자리하지만, 배치를 통해 서로 미묘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유리의 투명한 면, 아이보리색 오브제의 질감, 사 물의 파편성과 중첩된 층위는 작가의 조형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 해 서로 연결된다. 이는 연극 무대와 객석을 나누는 가상의 벽처럼, 작품이 관람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표면적 감상을 넘어 더 깊은 내적 구조와 연결되도록 돕는다. 이때의 연결은 작가라는 창을 통해 작품의 내부 구조와 서로 다른 조형 요소들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관람자는 이 창을 통해 개별 작품 뿐만 아니라 작품들 사이의 관계적 긴장, 배열의 리듬, 조형 적 흐름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홍유영의 작업은 ‘배열’이라는 개념을 통해 감각의 방향을 재조정한다. 유리의 층위, 해체된 사물의 재구성, 흐릿한 물성이 드리우는 그림자, 빛과의 관계에 이르는 이 모든 요소는 서로의 위치와 역할을 조율하며 또 하나의 배 열을 만든다. 이 배열은 관람자에게 즉각적인 시각적 대비가 아닌 점진적 인 식의 이동을 통해 작품의 구조적 관계를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는 시각적 절제와 공간적 깊이를 통해 보다 넓은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분절과 연결, 명료함과 흐릿함, 해체와 재구성으로 하나의 조형적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Disconnection and Connection Through ArrangementLee Sumin, Assistant Curator of SOMA In the white, empty exhibition space, Euyoung Hong’s works appear with blurred, restrained material qualities. This restraint takes a path different from stark contrasts that immediately stimulate the senses. Instead of delivering intense visual information, her pieces extend the viewer’s perception into a sensory layer beyond sight. Their haziness is not ambiguity, but a white space that opens into a deeper layer of perception. Euyoung Hong has long employed fragments of objects and materials discovered during the deconstruction of architectural sites and environments as her artistic medium. In the process of examining how discarded materials carry physical traces and histories of use, the artist has consistently studied the structural possibilities and formative transformations of furniture and glass, thereby developing her own unique mode of reconstruction. Her piece Arrangement within Arrangements clearly demonstrates this formative approach. In this work, glass panes of various sizes and shapes are layered so that transparency, overlapping planes, and the interplay of light and shadow generate a multilayered spatial arrangement. Each glass panel exists as an independent formative unit, but they illuminate one another’s structures through their transparent materiality and appear overlapped, creating a new perspective of arrangement. This shows a relational arrangement that changes at every moment depending on the viewer’s position and movement, going beyond any combination of physical structures. The shifting light and the shadows cast by the overlapping glass naturally merge with the exhibition space itself. Just as light passing through a negative film produces an image and completes a photograph, the work is not fully resolved at the moment of its fabrication but comes into being when light and shadow enter the space. She also develops a distinct spatial language in the sculptural pieces reconstructed from objects she has collected, including old furniture repurposed as material. Rather than presenting these objects as simple sculptural fragments, she deconstructs and rearranges them to build new curved surfaces and structures. In this process, geometric elements such as points, lines, and planes are reassigned new roles, generating spatial tension and forming a continuous flow of connections. Each piece in the exhibition stands as an individual entity, yet they form a subtle network of relationships through their arrangement. The transparent surface of glass, the ivory textures, the fragmentary objects, and the layered overlaps connect through an invisible passage shaped by the artist’s own visual vocabulary. Like an unseen wall separating stage and audience, this passage allows the works to access a deeper internal structure while maintaining a certain distance from the viewer, moving beyond superficial perception. This connection is mediated through the artist’s “window,” which links the internal structure of each work with its various formative elements. Through this window, the viewer encounters not only each individual piece but also the relational tensions, the rhythm of the arrangements, and the flow of formative energies that bind the works together. Ultimately, Euyoung Hong’s work readjusts the direction of perception through the concept of “arrangement.” The layers of glass, the reconstructed objects derived from deconstruction, the shadows cast by blurred materials, and their shifting relationships with light all form an additional arrangement in which each element redefines the others’ positions and roles. Rather than relying on immediate visual contrasts, this arrangement guides the viewer toward an understanding of the work’s structural relationships through a gradual, unfolding shift in perception.  The exhibition thus offers a broader sensory experience grounded in visual restraint and spatial depth. Visitors encounter a unified formative experience shaped by disconnection and connection, clarity and haziness, and the interplay between de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Silence Between Structures - 홍유영
  • 자크 랑시에르(Jacque Racière)의 『픽션의 가장자리(The Edges of Fiction)』(2017)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1929)에 관한 글에 언급되었던 네 개의 다른 서술자의 목소리와 복잡하게 기교를 부린 파열된 시간성들은 단순히 다른 시점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음과 말해질 수 있음의 정치성 즉 말할 수 있는 것과 말이 의미가 되는 방식의 또다른 구성을 드러낸다. 특히 네 개의 목소리들 중 말없는 자의 말을 하는 지적 장애인인 벤지는 사회적으로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 즉 소음을 내는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러한 그의 파편적인 소음은 소설 속에서 기존 서사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감각의 분할 및 질서를 만들어낸다. 《Silence Between Structures》(2025)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작동되는 구조와 시스템, 질서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파편화된 소음으로 간과되는 실체들을 감각의 층위로 떠올려 본다. 구조들 사이의 틈과 정지된 순간들 사이에서 어떻게 저항하며 잠재적 변화를 위한 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단순히 건축된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구축된 체계 안에서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숨겨지며 지워진, 침묵 속에 감춰진 질서와 관계 그리고 저항의 공간을 드러낸다. 구조들 사이의 침묵은 단순히 빈 공간, 공허 또는 고요함이 아니라 이질적인 장치로서 구조들 사이에서 작동하며 견고하고 지배적인 질서의 관계를 미세하게 흔들고, 미세하게 생긴 균열 사이로 구축된 공간적 배열 속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권력, 존재, 부재의 역학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 특히 “말의 모든 방향 지어진 도정을 없애 버리고, 말하는 존재들 사이의 모든 위계를 거부하는 비인칭적 글쓰기” 방식을 주목한다.[1] 소리와 분노의 이야기,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이야기에 내재된 말하지 않는 자의 것으로 간주하는 침묵은 시제와 목소리의 파열을 만들며 특정 사건을 무한히 지연시켜 현재 시제에 함께 놓이게 한다. 유리 판재, 가는 선, 전시장 백색 벽면과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색, 철거 지역이나 이동하는 공간 등에서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거나 포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대상들을 주목하며, 이들이 지닌 연약한 물질성을 극대화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시제와 이야기들은 관계와 질서, 말과 침묵, 구조와 비가시적 대비 사이에 놓인 복합적이고 미묘한 연동을 끌어올린다. 지배적인 구조 안에서 의미가 유보되거나 저항의 형태로 머무는 침묵의 간극 속에서, 체계는 미세하게 흔들리며 보이지 않던 또 다른 긴장 관계를 천천히, 비스듬한 각도로 드러낸다.   글 _ 홍유영   [1] 자크 랑시에르, 『픽션의 가장자리: 새로운 주제, 공통의 세계를 찾아 나선 지적 여정』, 최의연(역), 오월의 봄, 2017, p. 241.     In The Edges of Fiction (2017), Jacques Rancière discusses William Faulkner’s The Sound and the Fury (1929), arguing that its four distinct narrative voices and technically fractured temporality do not merely present different perspectives. Rather, they reveal the politics of what can be spoken and what can be heard as meaningful—in other words, an alternative configuration of speakability and sense. Among the four voices, Benjy, a cognitively disabled character who speaks for those without speech, is positioned as a being reduced to noise, someone socially excluded from legitimate articulation. His fragmented, inarticulate sounds disrupt the established narrative order of the novel, giving rise to a new distribution and ordering of the sensible. Silence Between Structures (2025) brings into the realm of perception those fragmented entities that exist between structures, systems, and orders operating within everyday urban environments—entities that are typically invisible, inaudible, and dismissed as noise. The work explores how such elements, located in the gaps between structures and within suspended moments, can function as sites of resistance and as fields of potential transformation. It is not simply concerned with constructed architecture, but rather with revealing spaces of order, relation, and resistance that have remained concealed, erased, or rendered silent within already established systems. Here, the silence between structures is not reduced to emptiness, void, or stillness. It operates as a heterogeneous apparatus, subtly destabilizing dominant and rigid relations of order from within. Through fissures that emerge between structures, this silence prompts a reconsideration of the invisible dynamics of power, presence, and absence embedded in spatial arrangements. Particular attention is given to what Rancière describes as an “impersonal mode of writing that eliminates all directed trajectories of speech and rejects all hierarchies among speaking beings.” In The Sound and the Fury, the silence internal to what is described as a story that signifies nothing—understood as belonging to those who do not speak—produces ruptures in tense and voice, infinitely deferring specific events while placing them within the present tense. Similarly, this work foregrounds objects that easily disappear from view or require sustained effort to be perceived: glass panels, fine lines, subtle chromatic differences against white gallery walls, and various objects collected from demolition sites or transient spaces. Through these materials, their fragile materiality is intensified. The reconfigured temporalities and narratives generated in this way draw out complex and delicate interdependencies between relation and order, speech and silence, structure and invisibility. Within the interstitial spaces of silence—where meaning is deferred or persists as a form of resistance inside dominant structures—the system begins to tremble subtly, gradually revealing, at a slanted angle, previously unseen tensions.  Text by Euyoung Hong
우리를 에워싸는 목소리들 - 이진실 미술비평/미학
  • 커다란 상아색 판재가 흘러내리듯 매달려 있다. 가느다란 금속 튜브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부유한다. 이번 전시《Silence Between Structures》에서 홍유영이 벌여 놓은 구조물들은 각자 견고하면서도 취약해 보인다. 벽에 기대거나 공간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정지된 역동성을 자아내는 금속, 유리, 나뭇가지 조각들은 어느 정도는 일관적이면서도 미시적으로는 일관적이기보다 터무니없기에 완결된 '형상’의 표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홍유영은 이처럼 조각의 형상보다는, 형상과 배경 사이를 진동하는 사물들의 희미한 잔존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힘으로 제시한다.전시장에서 그녀의 구조물들을 만날 때, 우리는 이것들의 원천이 철거되는 주거 공간이나 버려진 가구에서 왔다는 것을 간파하기 힘들다. 얼핏 보아 이것들은 통상의 산업적 제품의 자취를 거의 지니지 않은 것 같고, 어떤 의지로 혹은 어떤 표현적 방식으로 창출된 ʻ작품’의 매끈함과 고요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가가 가까이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시간의 흔적으로 녹이 슨 표면, 잘라내고 새롭게 접붙인 변형의 흔적들이 선연하다. 기실 홍유영은 20년 가까이 버려진 사물들의 절단, 해체, 재조립을 통해 비정형적이고 이질적인 구조를 탐색해왔으며, 특히 철거 현장에 파손된 유리부터, 색이 바랜 목재 가구들, 녹슨 철이나 스테인레스 강선 등을 세심하고 집약적인 노동의 과정을 거쳐 ʻ하이브리드적’인 오브제들로 변신시켰다. 그래서 이 혼종체들은 순수한 미적 오브제의 지위를 제 운명으로 삼은 것들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무심하게 지나치는 일상, 특히 도시 환경에서 마주하는(그러나 결코 의식적으로 쳐다보지 않는) 구조의 틈을 주시하고, 거기에서 분자적이고 파편적으로 작동하는 노이즈를 일종의 비가시적 실체로서 감각의 층위로 밀어올린 것이다.홍유영의 조각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자기만의 체적과 위치를 지니고 있던 이 사물들은 잘라내고 덧대고 마모시키고 용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경계, 내부와 외부를 재설정하게 된다. 벌어지고 절단되는 동시에 부분적으로 복제되면서 기존의 지지체는 버려지고 새로운, 혹은 투명한 지지체에 자신을 기댄다. 이 오래된 사물들이 부여받은 사후의 삶은 그전과는 다른 맥락과 형식으로 ʻ지금 여기’의 ʻ사이-공간(in-between)’으로서 가변적인 지형을 재구축한다. 이처럼 홍유영의 작업에서 조각의 ʻ형상’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시성의 조건에 달려있으며 매번 변화무쌍한 그 무엇이다.전시장을 들어서며 정면으로 보이는 오브제는 옆으로 돌아볼 때 끝이 굽은 목재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벽이나 기둥에 붙은 금속 선재나 금속판은 배경과 미세한 차이를 만들면서 배경에서 슬며시 분기한다. 어쩌면 형상-배경의 경계가 순간순간 무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 “비물질적 물성”1)이야말로 홍유영의 방법론이자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재료의 수준으로 강등된, 파편화된 사물들의 새로운 잠재성이 탄생하는 시간을 열어낸다. 나무 판재 끝에서 나무의 반지름 곡률을 흉내내며 다시 시작되는 유리판의 기예, 새로운 내부와 외부를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나무, 유리, 스테인리스의 결속, 연역적이면서도 분기해 뻗어나가는 매듭과 차이의 운율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구조보다는 구조들 사이에서 기포처럼 터지는 저항과 변화의 시간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것은 사멸의 순간이면서 죽은 사물들에 숨을 불어넣은 부활의 순간이자 변종으로 재탄생하는 생성의 순간이다.작가가 과거 (2022)에서 제시했듯이 이러한 순간은 뒤집힌 가시성으로만 가능한 어떤 공간성을 열어낸다. 특히 홍유영의 유리 작업은 투명해서 체적이나 부피를 거의 갖지 않기에 공간을 거의 바꾸지 않는 동시에 전복시킨다. 보이지 않음과 존재함의 함수를 흔드는 그 변동은 지형학적이라기보다 위상학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과거 파손된 유리 자체를 재활용하던 방식에서 전환해 유리를 구부리고 세우는 최근 조형적 시도들은 더욱 허약하고 아슬아슬해 보이면서도 날카롭고 질긴 연장(延長)의 물성을 드러낸다. 이토록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취약한 구조가 주는 긴장감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텅 비어있다고 여기는 어떤 자리에서 항상 흐르는 어떤 것을 상기시킨다. 고대의 생기론(生氣論)자들이 ʻ에테르’라고 불렀을 보이지 않는 매체, 보이는 것들 사이로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실체 또는 힘의 작동을 말이다.스테인레스 강판에 투명하고 미세한 유리 알갱이를 바른 (2024)는 비스듬히 바라볼 때 전혀 다른 강도의 빛을 내며 순간적인 추상을 만들어낸다. 이 고휘도 유리알들은 도로 표지용 도료에 사용되는 것으로, 재귀반사를 통해 야간에 운전자가 차선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재료다. 이런 물성을 조명하는 태도, 또 이것을 전면화하는 ʻ페인팅’은 우리 환경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매우 비가시적인 것들이 가시성의 실질적 지지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투명하게 환기시킨다. 유리알의 재귀반사뿐 아니라, 거미줄처럼 부유하는 스테인레스 튜브 구조나 구부러진 유리판들 또한 빛에 따라 형태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가변적인 가시성을 극대화하면서 ʻ보이지 않는 것들의 두께’를 드러낸다. 이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가시성의 평범한 진리를 제시하지만, 무엇보다도 비어있다고 간주되는 공허가 의미 없음도, 무(無)도 아니라는 것을 속삭이듯 전달한다.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의 말처럼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지만 결코 의미 없음이 아니다. 그는 침묵이란 말하기를 끊임없이 에워싸고 있는 배경이라고 했는데,2) 이 ʻ배경’은 뒤로 그저 물러선 것이 아니라 말을 에워싸는 힘이자, 말을 낳는(혹은 낳기를 거절하는) 말의 잠재태이기 때문이다. 말하기를 약속하지 않는 무수한 목소리들 사이로 배회하던 우리는 홍유영이 구축한 그 일시적인 말들의 파사드 앞에서 잠시 말을 멈춘다. 1) 2024년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열린 홍유영 개인전의 제목. 2) “우리는 발화되기 이전의 파롤과, 그것을 끊임없이 에워싸고 있는 침묵의 배경을 고찰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이 없으면 파롤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김화자 역, 책세상, 2020. 34쪽.
안-보이는 것을 거의 안-보이게 보여주는, 시각성의 기예 - 양효실 미술비평가
  • 1. 이름-정체성의 가내 예시들, 가구   ‘콘크리트 공화국’ 한국의 시민들이 ‘원하는’ 주거 형태인 아파트나 빌라가 등장하면서 가내 공간을 분할하는 새로운 이름들도 생겨났다. 안방, 거실, 서재, 다이닝룸, 작은 방 같은. 그리고 그 공간들에 획일적으로 들어가 비치되는 가구들, 가령 침대, 의자, 책장, 테이블 같은(요즘 신축 아파트에 붙박이로 설치된 장롱은 뺀다) 이름들이 있다. 사람이 앉거나 눕는 침대나 의자(소파는 대체로 나무로 만든 게 아니니 뺀다), 물건을 놓거나 넣는 책장, 테이블, 식탁과 같은(나무로 제작된 가구만 한정한 것은 홍유영의 입체 설치의 “파운드 오브제”가 주로 목재 가구들이기 때문이다). 가구는 목적이 분명하고, 기능에 최적화된 형태여서 우리는 그것들의 이름을 단박에 식별할 수 있다. 가구는 기능-목적이 곧 이름이고, 좋은 재질의 나무인가 상표가 무엇인가 등등에 따라 가격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미니멀한 가구도 있고, 장식으로 기능을 덮어서 화려할 수도 있고 심지어 주인, 대체로 안주인의 취향이나 미감을 엿볼 수 있는 가구도 있다. ‘이참’(이사해서, 곗돈타서, 지루함을 못견디는 변덕에)에 싹 교체했을 수도 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그 가구가 그 가구다. 가구는 음미의 대상, 모셔놓은 신주단지가 아니다.  눕다-앉다-넣다-놓다와 같은 행위를 보좌하는 엑스트라-세팅으로서 금방 안 보이게 된다. 안 보여야 좋은 가구이다. 눈에 거슬리거나 눈을 압도하는 가구는 잠시 ‘사물’일 수 있지만, 곧 가구는 제 자리, 제 기능에 합치되면서 눈 밖에 날 것이다. 가구의 일생은 나사-관절이 삐걱거리거나 휘거나 바래거나 유행에 뒤지거나 안주인이 변심하면 끝이다. 가구에 이야기가 들러붙을 수도 있지만, 물신이 되어 안주인의 사랑이나 욕망을 전담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아파트나 빌라에 비치된 가구는 소모품이기 십상이고, 아파트의 수명이 고작 삼십년 정도이니 가구의 일생은 더 짧은 게 당연지사다. 가구만 놓고도 우리는 근대가 요구한 정체성들, 사회적 효용성과 경제성에 맞춰 구조화되는 이름들의 일생을 일별할 수 있다. 이름으로서의 정체성은 불려지고, 쓰여지고, 잊혀질 수 있어서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그것’의 고유한 본질이나 실체로부터가 아니라 그것의 사회적 가치나 용도로부터, 말하자면 바깥으로부터 부착된 것이다. 정체성에서 결국 삐져나오고 있는 타자성의 잔여를 고려하거나 배려하는 임무는 반사회적-위반적 글쓰기가 전담할 것이다. 예술은 이름-정체성의 노동, 피로를 폭로하거나 정체성의 경계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타자성에 반응하는 사회적 행위이다. 한낱 가구를 갖고, 근대적 건축에서 가장 사적이면서 집단적인 장소인 집의 미미한 물건을 갖고 근대성의 비가시적 구조를 문제화하는, 폭로와 비판이라는 실천적 행위를 가장 안쪽에서, 가장 비정치적 소재를 갖고 하고 있는 홍유영이 등장할 때이다. 여성적 오브제인 가구에 대한 홍유영의 개입은 등가성, 기호의 대체가능성, 상품의 교환가능성에 기반한 근대의 비가시적 구조를 재고하고, 이름에 갇혀 있던 물건에서 물건을 뜯어내 사물로 옮겨놓고, 친밀함과 낯섬이 중첩된 사건성을 일으키려는 데 바쳐진다. 장인의 손길이 녹아있거나 노동자의 노동이 숨겨진, 부르주아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엿볼 수 있는 가구가 조각을 전공하고 입체설치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홍유영의 손길을 거쳐 다음-생을 얻는다.  2. 외부성으로서의 사물들의 함께있음 박수근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Neither Abstract nor Universal》은 홍유영에 의하면 모두 “도시공간 속 폐기물”인 가구가 소재다. 홍의 집이나 작업실 근처에 버려진 가구들, 재활용되거나 불태워지기 직전 “가장 취약한 때”에 물건들이 홍의 눈에 들어오고 “파운드 오브제”로 재명명되면서 다른 맥락으로 들어간다. 홍의 오브제는 개념적 해석을 거쳐 전시장에 놓인 레디메이드도, 냉소나 유머를 입은 키치적 대상도 아니다. 상품은 헤지고 낡고 상한 것, 가령 고가구나 유물이 일으키는 이야기가 부재한다. 상품은 뻣뻣하고 맨질맨질한 표면-기호일 뿐이다. 이야기가 불가능한 상품은 익명이고, 비인간적인 대량생산품이다. 현관문을 벗어난 고가구나 유물이 들려줄 이야기의 미디움을 자처하는 작가들이 있고, 레디메이드의 작위성과 반복성을 선택하는 작가들이 있다, 물론. 홍이 선택한 “폐기물”은 목재가구이고, 대체로 이야기가 붙지 않은 근대적 산물이고, 키치나 포스트모던 패러디의 맥락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운 전근대적(?!) 물성을 갖고 있고, 남성 작가들에게는 관심을 끌지 않을 여성적 오브제라는 특수성을 보유한다. 가구를 매일 쓸고 닦았을 여자들이 어른거리는 것이다. 안 보이는 노동들, 하찮은 가사 노동들이 버려진 가구를 줍는 여성 작가 홍이 읽은 근대 안의 비가시적 노동들이었을지 모른다. 안 보이는 것을 보는 집중이 홍의 수행이고 잘 안 보이게 만드는 게 홍의 장기이다.  작업실로 들어온 가구를 놓고 홍은 계속 응시한다. 일생 자신에게 할당된-강요된 역할에 종속되었던, 이름에 갇혀 있던 물건을 응시한다. 그것에서 그것임을 보면서 그것-아님을 동시에 보는 빈 시간을 개방한다. 대화이고 침묵이고 수행이다. 물건을 넣고 놓고, 사람이 앉고 눕는 데 바쳐진 가구의 수동적 삶에서 가구를 뜯어내고, 그것을 가급적 사물성-타자성으로 돌려놓기. 들뢰즈를 자주 인용하는 홍을 따라 말한다면 그것의 잠재태를 끌어내기 위해 그것의 현실태를 조금 밀어내기. 기호로서의 도구성뿐이었던 존재에게 무목적적 유희나 시각적 리듬을 선사하기. 홍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 메시지를 가구에 투사하는 게 아니라, 가구에서 가구를 초과하는 것, ‘강도’나 ‘다양체’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도 내려놓는다. 혹은 가구들이 리좀적으로 연결되는 수평면을 찾아내려고 그것들 안에, 아니 사이에 이미 들어가 있다. 가구의 그것임과 그것아님을 동시에 보는, 가구들의 관계 속에서 가구들을 이접적이고 연접적인 방식으로 종합하는 홍의 독특한 스타일, 비스듬하게 보고 개입하는 노동이 이제 등장할 것이다. 홍은 절단기를 들고 자른다―가구의 관절을 푼다―전체를 희생하고 부분을 획득한다―잔여를 남기고 개념을 제거한다. 가구를 가구이게 만든 면이 잘려 나간다. 놓고 넣고 앉고 눕는 기능을 전담한 면을 빼고 선을 남긴다. 목적론적 위계를 해체한다. 파운드 오브제는 이미 훼손되었고, 관건은 개체성을 잃은 물건들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흐름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끄집어내려는” 홍의 욕망은 사물을 개념에 욱여넣었던 근대적 노동을 중지시키고, “뼈대만 남기는”, “덩어리감을 덜어내는”, 그러므로 “구조적으로 설 수 없게 만드는” 노동, 선재하는 법이나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무로부터의 노동으로 물질화한다/된다. 능동과 수동의 중첩. 사물은 인간으로서 작품을 관람하려는 관객의 욕망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고, 시(詩)로부터도 멀어지는 것이고, 근대적 시각체제를 중지시키는 것이기에 사물에 대적할 말, 반응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흐물흐물해지고”, “힘이 빠졌고”, 단단한 목재이면서 파편화되어버린 홍의 사물들은 조성된 내부로서의 외부성 덕분에 하나이면서 다양체이고 자기이면서 타자인 채로 취약해지고 맑아져간다.   홍은 노동집약적인 공정을 거쳐 자기임을 거의 잃은 가구들, 혹은 사물들에게 아이보리 페인트를 칠한다. “전시공간의 비가시적 구조인 흰색과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차이”를 주려는 홍이 발견한, “원래 흰색이었던 가구가 빛의 영향으로 황변한 상태”라는 물질성-시간성을 차용한 것이다. 샌딩을 통해 맨질맨질해진 ‘파편들’은 아이보리색을 입음으로써 홍의 주관적 맥락에 안착한다. 소속과 정체성이라는 사회적 표준을 제거하는 마지막 노동이다. 이제 홀로 설 수 없는, 홀로 자기일 수 없는 파편들은 서로에 의지해서, 관계적으로, 마치 ‘패치워크’처럼 공동존재한다. 전시장에 들어선 것은 개체가 식별되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 조각인 것이다. 그렇다고 완성이나 자기지시성은 부재하는, ‘끝’이 불가능한 하나의 전체. 흐름이어서 사실은 계속 뻗어나가고 있는. 다른 장소에서는 다르게 배치되어 있을. 그래서 홍은 이들을 복수명사 “사물들(Things)로 부른다. 쓰러져 있고 모로 세워져 있고 쌓여 있고, 부재하는 면은 투명한 유리가 대리보충하고, 도대체 조각으로 안 보여서 누가 건드리면 와장창 무너질 것 같고, 이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너는 알아 맞출 수 있겠느냐고 나의 알아보고 자리를 정해줘야 편안해지는 주체성을 힐난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트라우마나 우울을 통해서 현시하는 사물성의 폭력성으로부터는 우리를 조금 보호하는 것 같은 이 전시를 놓고 홍은 짧은 글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사물과 공간들 사이, 자신과 타자, 대상과 주체 사이의 특정한 위치관계를 새롭게 드러내는 것은, 빈칸의 논리, 즉 거주된 공간의 공간적 정렬과 시선, 포함과 배제의 권력적 상호 관계 및 구조 그리고 끊임없이 생성하고 이접하고 분배하는 기술적 변환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고 적었다. 우리는 본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지? 보이도록 주어진 당연한 것들이 슬쩍 보이고 읽히지만 동시에 기괴한, 언캐니한, 신중한 의도 속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이 예술 앞(?!)에서 우리는 방전된다. 이것은 여전히 차갑고 몰개성적인 표면이고, 이야기를 입힐 수 없는 기호-상품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안 보이는 것들을 보이게 하되 거의 안 보이게 하려는 홍의 내기, 보이는 것들이 안 보여서 결국 보고 읽기의 관성이 흐릿해지는 이 유혹을 즐기는 데는 말도 눈도 감각도 좋은 방편이 아닌 듯 하다.    벽면에 의지해 ‘선(線)’이, 일견 책장이 원본이었을 것 같은 데 어디를 인용하고 수정한 것인지 영 확신이 서지 않는 조각이 벽을 타고 내려와서 바닥으로도 포복 중이다. 천장에 고정된 채로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여기저기서 잘라낸 선들을 이어 붙여 만든 곡선은 딱딱하게 부드럽다. 제자리가 어디였는지 알 수 없을 이 부분들, 자르고 이어서 계속 자기-증식 중인 부분들은 자라나고 움직이는 식물이나 벌레를 미메시스하는 듯도 하다. 동일성의 세계란 사실은 모든 것들이 목적도 의미도 없이, 상호관계 속에서 오직 변화하고 있을 뿐인 생성-흐름의 세계에 살짝 덧씌워진 베일에 불과하다면, 그 베일 아래에는 홍이 우리에게 제출한 이런 뒤섞이고 뒤얽힌 사물들의 배치가 있는 것이다. “추상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은”이란 홍의 전시 제목이 가리키는 게 아마 그런 장소, 세계, 흐름일 것이다. 추상이나 보편이라는 거대한 그물로는 잡히지 않을, 불안과 기이함이 스멀스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거기 사물들의 공동존재는.
Neither Abstract not Universal - 홍유영
  • Neither Abstract nor Universal Euyoung Hong   As the solo exhibition of Euyoung Hong held at the Contemporary Art Hall of the Park Soo Keun Museum, Neither Abstract nor Universal presents new three-dimensional installations that expand upon her Things and Negative Landscape series, which explore the themes of space and objects. Closely observing various changes created by spaces and objects within the systems of daily life in the city, the artist focuses on the points we perceive and those we do not in moments when buildings, things, or places break down and shows how such spaces and objects turn formless in material and immaterial areas; thus revealing new spatial relationships and structures. Euyoung Hong depicts (dis)continuous transformations of heterogeneous relationships—such as those between spaces and objects, materials and concepts, cities and spaces, and humans and societies—by amplifying the material or intangible characteristics of each target. Things (2024), as reinterpreted in this exhibition, presents the landscapes of objects on transparently complicated layers with inherent spatial volatility that would extinguish the objects and make them disappear in no time by breaking away from being spatial. One object is expanded to several different objects connected in different ways, and these objects change their spatial arrangements or locations in a new space. Instead of settling into fixed forms, these perceived objects undergo structural transformations, intertwining and unfolding into new materialities and surfaces. The forms of objects and spaces that externally seem to be heterogeneous and have no crossing points may also be understood to be the same continuous form in a topological structure. The diverse objects collected—which are used as objects of the artwork—break away from the conventional relationships and imply an internally undetermined state of tension. Through a process of identifying, disbanding, rearranging, and rendering disjunct the intrinsic characteristics of the objects, the artist creates the logic of a void to build without building, draw without drawing, and break away from the compositional arrangement. Transformed into an operating state, the incorporeal system produces specific spatial form and logic, finds reciprocity between heterogeneous individuals, and discovers yet another spatial indicator. How do the objects and spaces in daily lives come to exist in actual and concrete forms? With which methods are spaces reflected upon, how do objects become corporeal, and which relationships do they create by transcending the composition of space in the dimension of materiality? How can the structure of a surface be transformed and extended? “With respect to instance-X, it must be stated that it never exists where we look for it, and conversely, it cannot be found where it is. In the words of Lacan, it does not have its own space.”[i] In this invisible system—a space defined by the absence of objects, or the “void”—the very objects it lacks generate meaning and establish order as they move within a structure formed among heterogeneous entities. At the same time, they set this structure in motion, giving rise to new formations. Rather than merely seeking sameness or similarities among heterogeneous and tense objects and spaces that have broken away from familiar contexts and relationships, the focus shifts toward an invisible and newly structured order—a mode of thought that reinterprets and reconstructs sameness. This exploration of spatial relationships—between objects and spaces, selves and others, and subjects and objects—can be embodied through the logic of the void. This logic takes shape in the spatial arrangement and gaze of inhabited spaces, the power dynamics of inclusion and exclusion, and the continuous technical transformation of creation, displacement, and redistribution.   [1] Gilles Deleuze. The Logic of Sense. trans. Lee Jeong-woo. Hangilsa, 1999, pp. 104-105.박수근미술관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홍유영 개인전 《Neither Abstract nor Universal》에서는 공간과 사물을 주제로 한 기존의 ‘사물들(Things)’과 ‘네거티브 랜드스케이프(Negative Landscape)’ 시리즈들을 새롭게 확장시킨 다양한 입체 설치 작업의 신작들을 선보인다. 도시 즉 일상의 체계에서 생산된 공간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화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건축, 사물 또는 장소 해체의 순간에 우리가 지각하는 그리고 지각하지 못하는 지점들을 주목하고 그러한 것들이 물질적 또는 비물질적 영역으로 탈형태화되어 새로운 공간 관계 및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대상이 갖고있는 물질적 또는 비가시적 특징들을 극대화시켜 공간과 사물, 물질과 개념, 도시와 공간, 인간과 사회 등 이질적 관계들의 (비)연속적 변환을 그려본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보여지는 ‘사물들(Things)(2024)’은 장소적인 것에서 이탈되어 한순간에 소멸되어 없어져 버릴 것 같은 공간적 휘발성이 내재된 투명한 듯 복잡한 층위의 사물들의 풍경을 보여준다. 하나의 사물이 여러 개로 확장되고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고 새로운 공간에서 공간적 배치 또는 위치를 바꾼다. 지각되는 사물의 형태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로 귀결되지 않고 구조적으로 변형되고 서로 얽혀 또다른 물질 또는 표면을 돌출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 이질적이고 교차점이 없어 보이는 사물과 공간의 형태들은 위상적 구조의 동일한 연속적 변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오브제로 사용되는 수집된 다양한 사물들은 기존의 관계에서 이탈되어 내재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긴장상태를 내포한다. 이러한 사물들의 내재적 특징들을 끄집어내서 다시 해체하고 재배치 하고 이접하는 방식을 통해서 짓지 않고 짓고 그리지 않고 그리며 구성적인(compositional) 배치를 이탈하려는 보이드(void)의 논리를 구축한다. 비물체적인(incorporeal) 체계는 작동 상태로 변환되어 특정 공간 형태와 논리를 생산하며 이질적인 개체들 사이에서 상호성(reciprocity)을 찾고 또다른 공간적 지표(spatial indicator)를 발견하게 한다. 일상의 사물과 공간은 어떻게 실제적이고(actual) 구체적인(concrete)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가? 공간은 어떠한 방법으로 사유되고 사물들은 물질성(materiality) 차원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을 너머 어떻게 신체화되고 어떤 관계를 만드는가? 표면의 구조는 어떻게 변환되고 확장될 수 있는가? “심급-X에 관하여, 그것이 우리가 찾는 곳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역으로 그것이 있는 곳에서는 찾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라캉의 말대로, 그것은 자신의 자리가 없다.”[1] 대상이 결여된 곳 즉 ‘빈 칸’이라 일컬어지는 보이지 않는 체계는 결여된 대상이 이질적인 개체들 사이에서 형성된 구조 안을 움직이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질서를 만들며 구조를 움직이게 하고 발생시킨다. 익숙한 장소와 관계에서 이탈된 사물과 공간들, 그 이질적이고 긴장된 것들 사이에서 단순히 동일성 또는 유사점을 찾기보다는 동일성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질서 체계 즉 새롭게 위치화된 사고를 주목하게 된다. 이렇게 사물과 공간들 사이, 자신과 타자, 대상과 주체 사이의 특정한 위치 관계를 새롭게 드러내는 것은 빈 칸의 논리 즉 거주된 공간의 공간적 정렬과 시선, 포함과 배제의 권력적 상호관계 및 구조 그리고 끊임없이 생성하고 이접하고 분배하는 기술적 변환을 통해서 구체화될 수 있다. [1] 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정우(역), 한길사, 1999, p.104-105..
⥪ ← 1  2  3  4  5 → ⥬